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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군인이란 무엇인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가. 자원하여 온 사람들은 어떻고, 강제로 끌려온 사람이라면 또 어떤가. 그런 것들을 재고 따질 정도로 캐빌은 세심하지 않다. 그걸 당신이 모를 리 없을 테고⋯ 만일 그가 어떠한 신념을 가진 자였다면 좀 달랐을까. 그리 생각한다면⋯ 아니, 당연히 아니다. 근 3개월 간 캐빌이 인식한 고강준은, 꽉 막힌 원칙주의자, 그 정도였다. 첫 임무가 감정 상태를 고양시킨 건지, 애초 성격이 그런 탓인지⋯ 스스로를 내건 내기, 그런 짓을 할 사람은 아니었으나, 현실감이 부족한 그에게도 왜인지 거슬리는 건 한두 가지씩 생기더라. 알아낼 방법 따윈 없지만, 감으로 느낀다. 고강준이 제 감정 상태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그 사실을 알고 있다.

... 뭡니까, 결국엔 반박하지 말라는 이야기인 거 아닙니까? 참⋯ 융통성 없으시지 말입니다. 저랑 대화하기 싫으신 거 아닙니까, 그냥. 애초부터 강준의 말이 맞다는 전제를 두고 이야기를 하니까 저는 더 할 말이 없지 말입니다. 사상 강요고 뭐고, 제가 군인인 이상 승리할 수 없는 논쟁입니다. 멍청했습니다, 제가. 사명 어쩌구 할 때부터 대충 넘겼어야 하는데⋯ 그래, 당신이 이겼습니다. 만족스러우십니까.

애초 그는 이능력의 훈련을 위해 입대한 것에 가깝기 때문에, 더이상 이 논제로 말다툼이나 하기에는 역시 시간이 아까웠다. 교류는 있으나 흐름이 없는 논쟁 따위는 아무런 가치도 가질 수 없다. 능력의 통제는 가능하게 됐으나, 여전히 군에 남아있는 것은 이곳에서 의외의 적성을 찾았기 때문에. 그게 전부. 그러나 규칙과 제약 같은 건 존재가 무색해지는 사람. 어쩌면 당신에게 가장 거슬리는 유형의 인간일지도 모른다고⋯ 

... 아, 예. 퍽이나 그러시겠습니다. 미안하지만, 저도 그 정도 생각은 할 줄 알지 말입니다? 강준은 제가 아니라⋯ 제가 속한 군, 혹은 그 위쪽 사람들, 아닙니까? 믿고 있는 건. 빈 말은 마시지 말입니다. 저는 거짓말 안 합니다. 사람을 상대로 두고 감히 신뢰에 대해서 거짓말이라니, 그런 걸 어떻게 합니까? 저는 그렇게 낯짝 두꺼운 사람은 아니지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담 제 주관도 말해드리겠습니다. 저는ㅡ 싫습니다. 덜 불행하다고 해서, 그게 불행이 아니답니까? 그래, 어차피 강준은 군인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할 거 아닙니까. 강준은 아까부터 그런 식으로만 말하고 있습니다, 아십니까. 저로 하여금 할 수 있는 말이 없게, 답이 정해져 있다는 듯이⋯ 더 말해야 하나 싶습니다, 지금은. 원칙적이고, 결과론적이십니다, 강준. ... 아, 젠장. 입 닫겠다고 했는데⋯. 됐습니다, 그만 둡시다, 이런 이야기는⋯.

⋯⋯어쩔 수 있나. 군인인 이상 당신의 주장을 논파할 수는 없을 터. 이 논쟁은 압도적인 당신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캐빌은 그저 감이 좋다 뿐이지, 상대를 간파하는 일에는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으므로. 속에는 출처 모를 것들이 덩어리 진 채 억압되어가고, 사라진 자기주장은 길을 잃어 기어나올 수 없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완패.

'본인은 다르다' 라고 말하는 시점부터 말입니다, 강준. 실패한 거 아닙니까, 스스로 확신하는 순간부터⋯ 한계에 도전하는 거 좋지 말입니다. 그런 건 저도 같은 생각이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그게 완벽이란 단어와 의미가 같다는 말은 아닙니다. 강준은 백 퍼센트를 이루려고 하지 않습니까? 한계 돌파, 그런 건⋯ 더 위쪽이지 말입니다. 저는 항상 백십일 퍼센트가 목표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 이상 말입니다⋯.

퍼센테이지 따위의 수치를 나열하며⋯ 눈 맞춘 채 조금 좁혀갔다. 3개월, 3개월이니 당신이 타인과 닿는 걸 싫어한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구태여 손 대서 적개심을 낳고 싶지도 않았으매 실제로 고강준이란 사람을 좋게 보고 있었기에 괜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가만히 그 낯짝을 하나하나 뜯어보자니⋯

... 내기 성립입니다? 패자가 승자에게 귀속되는 걸로, 말입니다. 작전 끝나고 성과를 따졌을 때 제가 이기면, 그땐 강준은 제 겁⋯ 아니, 어감이 좀 이상한데 말입니다, 그런 뜻 아닙니다? 강준은 충분히 유능한 사람이니까 말입니다⋯ 어떻게 써먹을지는 그때 가서 고민해보겠습니다.

분위기가 고조된 느낌이라, 직감적으로. 싸우는 건 좋아하지만, 피아식별은 할 줄 알기 때문에. 더군다나 팀원과의 관계를 망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남은 건⋯ 작전 수행을 잘 하는 일. 마무리되기 전까지 당신과는 괜찮은 관계를 쌓을 수 있었으면 내심 생각하지만⋯ 어쨌건 승부는 시작되었으니 전력으로 임하는 것 외엔 없다. ⋯당신을 얻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