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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

군상, 이응노

 

 

사람.

사람이 사랑하는 것.

사람이 사랑하여 마땅한 것.

 

취미, 혹은 문화, 그게 아니라면 세계.

전 세계 인간 군상을 따라 스스로 맞춰나가는 것에 의미를 찾는 행위.

유행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행복한 것을 찾아 행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주관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행복하지 않은 이들은 어디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가

실은 행복하지 않은 이들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담 세상엔 행복한 사람만이 있을 뿐이며

행복의 총량이 인류 인구 수를 넘어설 때 정신 속 무대의 빛은 나를 다시 비춘다.

 

주관이 무엇인가 행복이 무엇인가 불행은 또 무엇인가

캐빌 프로빈스, 그 삶에 큰 굴곡이 있었느냐 묻는다면 부정할 수 있다.

평범한 삶, 평범한 부모, 평범한 벌이, 평범한 가정

평범하단 단어 뜻을 구태여 지정하고 그 의미를 제한하는 건 필요하지 않다

인간으로서의 능력 손에서 불이 나오는 것 타인을 상처 입히는 것

 

그 어떤 것들도 그에게 행복을 줄 수 없었다.

 

가끔 그런 것이 있다

심장 중심으로부터 불타올라 전신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어느 날 찾아오는 것임이 분명하다

직접 찾으려 함에 절대 찾아오지 않는 불성실한 심장이 있다

 

결론

캐빌 프로빈스에게 심장은 찾아오지 않았다

단순히 게임기를 만지작대며 찾는 일시적인 행복 따위에 목 맬 정도로 그의 삶은 텅 비었으며

뻗어나온 불꽃이 타인의 세상 하늘을 태웠을 때엔 솔직히 우울했다

우울감이 몸을 잠그면 발 끝부터 늪에 빠지며

머리카락 한 올 남지 않을 때까지 빠진 이후엔 늪 안의 늪으로 가는 거니까

 

그는 말한다 격투 게임이 제 인생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스스로 그리 말하니 바보같은 당신들은 그러려니 하며 믿을 뿐이겠지만

자기도 모르는 새 지배당한 마른 행복은

서름하게 잔을 비우고

껍데기 속 공간을 파고들어 가짜보다 진짜같은 가짜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행복은 찾아온다 구태여 찾으려 하지 않아도 행복은 찾아온다

스스로 믿는다면 행복이다 무얼 행복이라 칭할 수 없어도 찾아온다

그 삶의 조각 조각 떨어져 나간 미련은 그에게 알 수 없는 길로 버려졌고

표지판은 인도할 수 없고 별자리는 빛 내리지 않았고

인생의 반절은 쓰레기

뜻대로 찾을수 없는것

활시위는 당겨진 채 불성실한 심장을 향하며 땅 속 깊이 묻을 자리를 주었다

 

알고 있는가 사람이란 불완전한 존재이며 한평생 완성될 수 없음을 알고 있는가

완벽이란 없다 바라는 걸 이루어도 채워지지 않는 건 채울 수 없다

행복하고자 손에 쥔 것은 손바닥 구멍 사이로 새어나가 자신을 잃게 만들어 나를 되돌린다

 

인간은 인간에게 상처입고 인간에게 버림받으며 인간에게 사랑받고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개중에 몇은 할 수 없었다 불꽃이 튀는 손은 상처 입히기 충분했으며

본래 불이란 인간의 진화의 산물

그러나 제게 불은 화마 이외로는 인식되지 않았으며

자제력을 잃은 뇌 조각은 인간을 삶에서 벗어나게 인도한다

잘린 상처와 뜨거운 피부 가죽을 아이는 견딜 수 없다

 

아이의 부모는 시한폭탄을 데리고 산다 시간은 표기되지 않은 시한폭탄

자르지 않고 터뜨리지 않고 오로지 내버려 둘 뿐임이 그 선택이었으며

이내 창조주는 피조물을 격리하여 스스로 깨닫고 걸으라 명하기에 이른다

 

죽음이란 개념을 쉽게 생각할 수는 없다

죽음이란 삶의 끝이며 다시 시작이 되는 전환점이며

겪어보지 않은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죽음이란 나를 고통에 울부짖게 만드는 게 아니다

죽음이란 재도전의 기회를 줄 구세주임이 분명하다

 

알고 있지 않은가 당신도 다시 뛰어든다는 행위가 인간에게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 것인지

 

인간이 죽음을 겪을 때

주마등

이라고 한다

제 삶 흩어진 조각들이 혼의 흔적을 따라 일순 결합하는 기억의 뭉침

 

그 속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캐빌 프로빈스.

 

우리 팀입니다.

 

무슨 팀인가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팀입니다.

 

어떤 사람들이지요?

 

내... 가족입니다, 가족.

 

당신과는 피도 섞이지 않은 사람들일 텐데요.

 

그런 게 무슨 상관입니까. 제 무엇보다 소중한 이들입니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어땠나요.

 

행복했습니다.

 

무엇이.

 

약속을 지켰습니다.

 

무슨 약속.

 

너무 많아서 나열하기엔 시간이 짧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너무 미안합니다.

 

무엇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죽어버린 것이.

 

왜 죽었나요.

 

복수심에 눈이 멀어서.

 

왜 눈이 멀었나요.

 

내가 아무것도 못 했기 때문에.

 

왜 아무것도 못 했나요.

 

내가... 내가, 내가 바보라서...

 

후회되나요.

 

조금은.

 

돌아가고 싶나요, 그들의 곁에.

 

여기 있는 세 명과 함께라면.

 

그건 불가능해요.

 

압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 때에도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그랬을 겁니다.

 

왜죠.

 

그게 제 최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캐빌 프로빈스는 죽는다. A3 팀의 첫 작전의 마지막 전 날, 캐빌 프로빈스는 죽는다.

능력을 쓰지 못해서, 상대가 너무 강해서, 몸을 세 번이나 물어 뜯겨서, 어리석은 선택을 해서.

사랑하는 이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더이상 그들에게 의지로 남을 수 없어서.

 

캐빌 프로빈스는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는 건 아프더라. 몸이 찢기는 경험은 고통스럽더라. 동료의 시체를 보는 건 힘들더라.

무력하다는 건 슬픈 일이더라. 전력을 다하지 못했다는 건 아쉽더라. 남기고 떠나려니 무섭더라.

후회하는 건 우울하더라. 얼굴을 떠올리는 건 어렵더라. 마지막으로 마주하는 건 기쁘더라.

 

캐빌 프로빈스는 죽는다.

 

죽는다.

 

그릇된 선택으로 죽는다. 전력을 내보이지 못해서 죽는다. 팀원을 잃었기에 죽는다.

생각이 부족했기에 죽는다. 이해하지 못했으니 죽는다. 겁 없이 덤볐으므로 죽는다.

 

후회하는가, 두려웠던가, 고통스럽던가.

 

누구보다 바보같았고, 누구보다 무모했으며, 누구보다 용감했고, 누구보다 멍청했던,

 

 

 

캐빌 프로빈스는 죽었다.